남겨진 편지

    서고 깊은 곳, 먼지 쌓인 책상 위에        밀랍으로 봉인된 편지가 놓여 있다. 봉인은 이미 반쯤 부서져 있었고, 안의 종이는 놀랍도록 하얗다.

이 글을 읽는 이에게 — 나는 떠나며 이 서고의 모든 기록을 당신에게 맡깁니다.

편지를 든 손끝이     떨린다. 서명란에는 받는 이의 이름이 비어 있다. 마치 처음부터 그 사람 당신을 기다렸다는 듯이.

  창밖의 빛이 기울며 책장 사이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. 편지는 이렇게 끝맺고 있었다. 서고의 목록은 세 권의 대장으로 나뉘어 있으며, 첫째 권은 별자리와 항해에 관한 기록을, 둘째 권은 왕국의 오래된 법과 판례를, 셋째 권은 이름이 지워진 어느 가문의 일기를 담고 있다는 것. 그리고 그 셋째 권만은 절대로 촛불 곁에서 펼치지 말라는 것. 종이가 낡아서가 아니라, 그 안의 문장들이 불빛을 받으면 다르게 읽히기 때문이라고 했다. 당신은 편지를 접어 품에 넣고, 천천히 서가 사이로 걸음을 옮긴다. 발소리가 높은 천장에 부딪혀 두 번씩 되돌아온다.

답장을 쓸 것인가

책상 서랍에서 잉크와 펜을 찾아냈다. 이름 없는 필경사이라 불리던 당신에게, 지금 이 순간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.

용기 수치는 현재  — 손끝이 아직 머뭇거린다.

밤이 깊었다. 서고의 촛불이 하나씩 꺼져 간다.

당신은 편지를 셋째 권 대장 사이에 끼워 넣는다.

부치지 못한 답장

서고의 문이 등 뒤에서 닫힌다. 서명 없이 떠난 밤의 공기가 유난히 차다.

끝.